글: 소애 김나영

그동안 수호신 리딩과 영적 각성 활동을 이어오며 마주한 수많은 구도자들의 공통된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영성과 음식물의 상관관계’였다. 어떤 이들은 “육식은 영을 탁하게 만드니 반드시 채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동물을 살생하는 것은 잔인하기에 채식만이 영적이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각성 초기에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고뇌와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수호신과의 깊은 교감을 통해, 인간의 잣대가 아닌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 영혼의 가치와 생명 섭취의 본질을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나의 수호신은 내게 “모든 영혼은 똑같이 소중하다”고 전해주셨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생명이 없다. 겉을 감싸고 있는 외피(형태)만 다를 뿐, 깃들어 있는 영혼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 지구라는 물질계에서 살아가며 애초에 계획한 영혼의 목적과 운명을 온전히 펼쳐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체를 유지할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

이어 수호신은 인간의 육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소에 따라 섭취해야 할 대상이 달라지며, 지구라는 생태계 시스템 자체가 동물과 식물의 섭취를 통해 서로 얽히고설켜 생명을 이어가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작동하고 있음을 설명해 주셨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기에 취할 수 있는 식재료가 극히 제한적이었고,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 삶이 풍족해지면서 접할 수 있는 식재료 또한 매우 다양해졌다. 우리가 각자의 운명을 펼쳐가는 과정에서는 때로 막대한 체력과 에너지가 소모되기도 한다. 육체를 온전히 지탱하며 계획한 삶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균형 잡힌 음식 섭취를 통해 동식물들이 내어주는 에너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설명에 대해 일부 채식주의자들은 “굳이 동물을 섭취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느냐”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은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본질에 더욱 깊이 주목해야 한다. 우주의 시선에서 모든 영혼의 가치는 무게를 잴 수 없을 만큼 평등하다. “동물은 생명이니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되지만, 식물은 마음 놓고 먹어도 된다”는 관점은 인간의 편의적인 시각일 뿐이다.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에도 고유한 생명과 영혼이 오롯이 깃들어 있다. 겉을 둘러싼 형태만 다를 뿐, 동물이나 식물 모두 저마다의 신성한 에너지를 지닌 존재들이다. 심지어 밥상에 오르는 쌀 한 톨조차도 스스로의 생명력을 내어줌으로써 우리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든든한 에너지를 건넨다. 바로 이 ‘영혼의 평등성’을 대전제로 삼고, 생명 섭취의 본질을 다시 깊이 사유해 보아야 한다.

동물과 식물로 선을 그어 생명의 가치를 함부로 규정짓는 태도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오만이며, ‘고통 감수성’의 모순에 불과하다.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거나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표현하는 동물에게만 손쉽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러면서 소리 없이 잘려 나가는 식물의 생명은 한 단계 아래의 하위 물질로 치부해 버리는 편협한 사고다.

식물 역시 신경 전달 물질과 유사한 화학 신호 체계를 통해 상처에 반응하고 주변과 긴밀히 소통한다는 생물학적, 생태 철학적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동물 살생은 죄악이지만 식물 섭취는 죄책감 없이 정당하다”는 식의 주장은, 결국 인간의 감각 기관에 와닿는 자극만을 기준으로 삼은 이분법적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동물과 식물뿐만 아니라 광물에 이르기까지 우주 만물에 신성한 본질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크기나 형태, 움직임의 유무로 생명과 영혼의 가치에 등급을 매길 수는 없다. 또한 화엄 철학에서 말하듯, 미세한 풀 한 포기 안에도 온 우주의 인과와 생명력이 담겨 있기에 식물을 취하는 행위 역시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희생을 받아들이는 숭고한 과정이다.

나의 수호신 역시 밥상에 오르는 쌀 한 톨, 콩 한 알, 과실 한 개에도 모두 고유한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일깨워 주셨다. 비록 물리적 형태는 사라졌을지라도 그들이 남긴 에너지는 온전히 보존되기에, 그 희생에 대한 깊은 감사와 참회의 마음으로 음식을 대할 때 그 에너지가 우리 몸 안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입고 있는 옷 또한 동물과 식물, 광물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형체는 변형되었을지언정 옷감 한 올 한 올에는 그 물질들이 품었던 영혼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음식뿐만 아니라 우리를 감싸고 있는 옷과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깊은 감사와 존중의 마음을 품는 것이 진정한 영성인의 태도다.

이는 북미 원주민들의 오랜 영적 지혜와도 맞닿아 있다. 그들은 들소를 사냥하든 나무 열매를 채집하든, 이를 단순한 ‘살생과 포식’으로 보지 않았다. 대자연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육신을 잠시 내어준 ‘신성한 나눔과 선물’로 받아들였기에, 음식을 취하기 전 반드시 그 생명의 영혼을 향해 깊은 감사와 참회의 기도를 올렸다. 수호신의 가르침처럼, 인간이 이 물질계에서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 다른 생명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우주적 생명 순환의 섭리’다.

따라서 영적 구도자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는가’로 선을 그으며 도덕적 우월감에 젖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나의 식탁과 삶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준 모든 동식물과 사물의 희생을 가슴 깊이 자각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건네준 거룩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이 생에서 내가 완수해야 할 영혼의 목적과 운명을 바르게 펼쳐내는 데 있다.

[ 작가 소개 ]

소애 김나영

코페아신드롬 대표 |국제 표준 메타영성 협회장

일본 커피 거장들에게 사사한 커피 로스터이자, 영적 각성을 통해 수호신과 만난 실전형 메타영성가.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며 내면의 신성을 깨우고자 하는 이들의 영적 여정을 돕고 있습니다.

▶ 작가 상세 정보 및 커뮤니티: https://linkseller.net/coffeasyn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