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애 김나영(코페아신드롬 대표, 국제 표준 메타영성 협회장)


진정한 배움은 머릿속 암기가 아니라 온몸과 영혼의 체득에서 나온다. 장인정신의 세계는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사이토 다카시는 저서 《일류의 조건》에서 ‘기술은 훔치는 것’이라 말했다. ‘훔친다’는 말이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으나, 이는 장인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일본식 표현을 빌려온 것이다. 스승의 눈짓과 손끝 하나까지 집요하게 관찰하여 자기 것으로 흡수하라는 뜻이다.

어떤 기술이든 직접 몸으로 부딪쳐 체득해야만 그 분야의 본질을 꿰뚫는 힘이 생긴다. 그렇기에 장인의 세계에서 스승은 결코 기술을 손쉽게 떠먹여 주지 않는다. 배우는 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알아차리고 깨치는 시간이야말로 배움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지식이나 기술을 터득하는 일 역시 알아차림과 흘려보내기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이는 영성에서 감정을 정화하는 이치와 같다. 우리가 매일 일어나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정화를 통해 깨달음으로 나아가듯, 기술 또한 끊임없는 반복을 거쳐 불필요한 의식의 장막이 걷힐 때 비로소 내면이 확장되며 예술의 경지로 승화한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부모가 문법 규칙이나 발성 이론부터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의 말을 수없이 듣고 상황을 보며 의미를 감각으로 알아챈다. 그 감각이 쌓여 저절로 말문이 트이고 소리를 낸다. 정교한 문장력을 갖추고 글을 쓰는 단계는 그 감각적 체득이 완전히 자리 잡은 뒤의 일이다.

수영이나 피아노 같은 예체능 역시 처음부터 이론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수영은 일단 물속에 들어가 물의 저항과 부력을 몸으로 느끼는 것부터 배운다.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건반을 직접 두드리며 손끝에 닿는 감촉과 타건마다 달라지는 음색의 차이를 손과 귀로 먼저 체득한다. 감각이 자리 잡힌 뒤에야 악보를 읽고 복잡한 화성학 이론을 받아들이며, 비로소 높은 수준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오랜 시간 일본에 머물며 그들의 문화를 직접 겪은 나 역시, 일의 순서와 본질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부딪쳐 배웠다. 일본 사회는 특별한 예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일상 곳곳에 장인정신의 태도가 깊이 스며 있다. 사소한 일 하나에도 절차와 감각을 몸에 익히도록 요구하는 그들의 생활 방식 자체가 이러한 체득의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입식, 매뉴얼식 교육은 모든 이론과 수치,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학습자는 규격화된 정답을 수동적으로 암기해서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지만, 정작 예상치 못한 변수나 실제 현장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응용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활자화된 지식만으로는 상황의 맥락을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도제식 교육은 단 하나의 힌트나 화두만을 던져둔 채 학습자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만든다. 스승이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는 이유는 방관이 아니다. 배우는 이가 대상을 끝없이 관찰하며 온몸의 감각으로 직접 원리를 깨우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외부 매뉴얼에 휘둘리지 않는 고유한 내면의 직관과 자립심이 뿌리내린다.

이러한 구조는 상담 심리의 본질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좋은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정답이나 해결책을 직접 쥐여주지 않는다. 대신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내면을 직시하도록 이끈다.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자립심을 기르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이 곧 도제식 교육에서 스승이 제자의 자생력을 깨우는 방식과 완벽히 일치한다.

칼 로저스는 “해결책과 치유의 열쇠는 상담자가 아닌, 오직 내담자 자신의 내면에 이미 존재한다”고 보았다. 상담자가 섣불리 지시하지 않고 거울이 되어 비추어줄 때, 내담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내면의 자기실현 경향성을 꽃피운다.

인지행동치료(CBT) 역시 마찬가지다. 상담자는 정답을 주입하는 대신 본질을 꿰뚫는 질문만을 던질 뿐이다. 내담자 스스로 왜곡된 사고를 자각하고 이를 바로잡도록 이끄는 이 방식은, 스스로 진리를 낳게 돕던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그 궤를 같이한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지켜온 멘토링의 원칙 역시 이러한 과학적 상담과 도제식 배움의 본질을 기반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동안 적지 않은 이들이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설명이 불친절하다”, “너무 추상적이라 와닿지 않는다”, “왜 속 시원히 답을 주지 않고 내 수호신에게 직접 물어보라고만 하느냐.”

그러나 이는 스스로 사유하고 알아차릴 책임을 포기한 채 타인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수동적 의존에 불과하다. 의존은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달콤한 함정이다. 참된 스승은 제자를 목적지까지 대신 데려다주는 이가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어줄 따름이다. 그 나침반을 쥐고 홀로 어둠을 헤쳐 길을 찾아내는 것은 오롯이 구도자의 몫이다.

자신의 내면을 일깨우고 삶을 주도해 나가는 힘은 결코 남이 해결해 줄 수 없다. 구도자가 질문을 품고 스스로 부딪쳐 온몸으로 체득할 때 비로소 앎은 내면의 지혜로 작용한다. 도제식이 보여준 것처럼 스승이나 멘토, 혹은 상담자를 거울삼아 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에서 답을 찾는 여정이야 말로 시대를 초월한 배움의 본질이다.


<작가 프로필>

코페아신드롬 대표/국제 표준 메타영성 협회장/아카식레코드 리딩 힐러.

일본의 커피 거장 카페바흐 타구치 마모루 씨에게 로스팅을, 다이보커피점의 다이보 카츠지 씨에게 강배전 융드립을 사사한 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향기를 전하고자 귀국했다. 오직 커피만을 소명으로 여기며 제2의 인생을 살던 중, 영성 수행이나 지식 없이 스스로 영적 각성을 경험하며 자신의 수호신과 조우했다. 수호신의 가이드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목적을 깨달은 후, 자신이 각성한 방식 그대로 타인의 영적 여정을 돕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100명이 넘는 이들에게 대가 없이 수호신과의 만남을 인도했으며, 그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국제 표준 메타영성 협회’를 창립했다. 현재는 제3의 인생으로 공동체와 함께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며, 내면의 신성을 믿고 각성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재능기부와 심신 치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https://linkseller.net/coffeasyndrome